마리아 영화후기 안젤리나졸리열연 실존인물재조명
무대 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이 현실의 외로움 속에서 삶을 정리해나가는 이야기. 영화 <마리아>는 단지 유명 오페라 가수의 전기를 넘어, 자아와 명성, 사랑과 고독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마리아 칼라스를 조명합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로 불린 칼라스의 생애 마지막 한 주를 다룬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 재현을 넘어, 진정한 ‘예술가의 숙명’에 대해 사색하게 만듭니다.
음악과 패션, 그리고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녹아든 화면 속에서 우리는 오페라의 디바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칼라스를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파격적인 변신과 감독 파블로 라라인의 정제된 시선이 만나 빚어낸 깊이 있는 영화로, 클래식 음악과 인물 중심 서사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꼭 눈여겨봐야 할 작품입니다.
줄거리
1977년 프랑스 파리. 세기의 소프라노로 불리며 전 세계 무대를 사로잡았던 마리아 칼라스는 이제 무대에서 물러난 채 홀로 은둔하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머무는 공간은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그 속에는 한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닌 수많은 기억과 상처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녀의 거처에는 외부인의 방문이 드물고, 일상은 단조롭게 반복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매일 아침 고요한 창문 앞에 앉아 레코드판에 담긴 자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음정을 완벽하게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한 절망과 상실감이 서서히 내면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곁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집사이자 오랜 시간 함께한 조력자는 묵묵히 그녀의 일상을 보좌하며, 연인 오나시스와의 과거를 기억 속에서 함께 정리해 나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오나시스 역시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와의 사랑은 달콤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무대를 이해했던 남자였지만,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안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외부 세계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언론은 그녀의 사생활을 뒤쫓고, 대중은 칼라스의 현재보다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합니다. 마리아는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는 거리에서 조용히 고개를 돌리며 그 시선들을 피해 다닙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망이 꺼지지 않은 채 살아 있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다시 들은 푸치니의 「토스카」와 베르디의 「아베 마리아」는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며, 한때 무대를 지배했던 감각과 떨림을 다시 불러일으킵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마리아는 어느 날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오직 자신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자 결심합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공연이 아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존재가 예술과 함께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고, 스코어를 펼치며 음정을 맞춰봅니다. 예전처럼 목소리가 높이 올라가지 않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자신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그리고 무대가 아닌 현실에서도 끝까지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 과정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극심한 소모를 요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고, 늙어버린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며 때때로 좌절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그 구원은 박수갈채나 명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주는 순수한 자기 위로와 해방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마리아가 마지막 연습을 거듭하며 무대에 다시 서는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그녀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하고, 음악이 그녀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지를 정밀하게 그려냅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자 하는 한 여성으로서, 마리아 칼라스는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투쟁합니다.
그리고 그 무대. 관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피아노 반주와 그녀의 노래, 그리고 그녀 자신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이 되는’ 경험을 하며,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아도 예술가로서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세상의 모든 갈채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음악은 그 무엇보다 진실하고 절실한 울림을 품고 있었습니다.
영화 <마리아>는 이처럼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한 여성이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보여주는 치열한 고백이자, 고독한 아름다움을 담은 여운 깊은 이야기입니다.
감독과 출연진
<마리아>를 연출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실존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정평이 난 연출자입니다. 그는 이전 작품 <재키>와 <스펜서>에서 각각 재클린 케네디와 다이애나 스펜서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며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마리아 칼라스를 전설이 아닌 ‘한 사람’으로 다가가, 무대 이면의 감정과 고뇌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구현해냅니다.
주인공 마리아 칼라스 역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습니다. 그녀는 이번 역할을 위해 7개월에 걸친 보컬 훈련을 받으며 직접 오페라 곡을 소화해내는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칼라스의 내면적 복잡성과 외면의 품위를 동시에 표현한 졸리의 연기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도전적인 역할 중 하나로 손꼽힐 것입니다.
조연으로는 이탈리아 출신 배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와 알바 로르와처가 함께 출연하여, 마리아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로 활약합니다. 또한 패션과 오페라의 접점에서 마리아의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강조하는 요소들 역시 출연진의 연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마무리
<마리아>는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진했던 여성의 진심 어린 독백처럼 다가옵니다. 장면 하나하나에 녹아든 오페라의 정수, 시대를 초월한 의상과 배경, 그리고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를 통해 우리는 ‘디바’라는 이름 이면의 쓸쓸함과 투혼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2025년 4월 16일, 국내 극장에서 정식 개봉되며, 추후 VOD 플랫폼과 IPTV 서비스를 통해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네마틱한 감성과 클래식 음악이 만난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감정을 선사할 것입니다. 음악이 흐르고, 인물이 무대 위에 서는 그 순간, 우리는 한 여성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