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틱 믿음을 조종하는 자의 섬뜩한 초대 A24 공포영화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까지도 손에 식은땀이 맺히는 영화가 있습니다. 2025년 A24가 선보인 공포영화 <헤레틱>은 그런 작품입니다. 단순히 관객을 놀래키는 자극적 장면보다는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감과 심리적 긴장으로 압도하는 이 영화는, 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무겁고도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헤레틱>은 제목이 암시하듯 '이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전하는 공포는 단순히 종교적인 위협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념의 붕괴, 믿음을 가장한 지배, 그리고 내면의 광기를 조명하는 방식이 매우 독창적이며 섬뜩합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늘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맞닥뜨리는 인물들의 심리 변화는 관객 스스로도 믿음의 실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줄거리
이야기는 젊은 여성 전도자 두 명이 외딴 주택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시스터 반스와 시스터 팩스턴은 진심 어린 신념으로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던 인물입니다. 그러던 중 길가의 고요한 저택 앞에서 중년 남성 리드와 마주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그의 집에 초대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리드는 아내가 블루베리 파이를 굽고 있다며 자매를 거실로 안내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곧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파이 냄새라고 생각했던 향기는 사실 향초였고, 집 안에서는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으며, 현관문은 특정 시간에만 열리는 구조라는 설명이 이어지면서 자매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됩니다.
리드는 이윽고 자신이 오랜 세월 연구해 온 종교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세계 각지의 종교들이 결국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버전의 모노폴리 게임을 예시로 들며, 외형은 달라도 게임의 규칙과 시스템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마찬가지로 종교 또한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자매의 신념을 시험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들을 지하로 이끕니다. 그 지하 공간은 단순한 저장고가 아닌, 리드의 편집증적 세계관이 응축된 광기의 공간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의 역할을 자처하고, 자매에게 믿음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시스터 반스와 팩스턴은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드가 만들어낸 심리적 압박 속에서 점차 극단적인 공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의 신앙은 리드가 가하는 왜곡된 철학 앞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되고, 단순히 갇힌 피해자가 아닌, 믿음과 생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처절한 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리드는 자신이 이단자라 칭하면서도 스스로 신격화된 존재로 행동하며, 여성들을 상대로 한 종교적 실험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독 출연진
<헤레틱>은 스콧 벡과 브라이언 우즈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기존 공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침입자' 설정을 뒤집어, 주인공들이 자발적으로 진입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구현합니다.
특히 극중 장소는 일반적인 흉가가 아니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평범한 집입니다. 이러한 일상성 속에서 벌어지는 일탈은 관객에게 더욱 현실적인 공포를 안깁니다.
배우 휴 그랜트는 이 작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기존의 로맨틱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불길하고 교활한 인물로 등장하여 충격을 줍니다. 겉보기에는 예의 바른 신사이지만, 그 내면에는 철저히 광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는 억압 속에서 신념을 지키고자 애쓰는 인물들을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특히 두 사람의 끈끈한 연대감은 단순한 생존 드라마를 넘어, 여성 간의 강한 유대와 연대를 그리는 서사로 확장됩니다.
리드와 자매들 사이의 심리 싸움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닌, 말과 믿음, 태도의 교묘한 전술로 전개되어 관객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듭니다. 후반부 반스가 죽음을 무릅쓰고 팩스턴을 구하는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클라이맥스이자,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순간입니다.
마무리
영화의 결말은 외적으로는 탈출이지만 내적으로는 믿음에 대한 깊은 자각의 순간입니다. 팩스턴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눈 덮인 벌판에 홀로 남겨진 채 정적과 마주합니다.
그 순간, 나비 한 마리가 팩스턴의 어깨에 앉습니다. 이는 초반 반스가 “죽은 후엔 나비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장면과 연결되며, 반스의 영혼이 팩스턴을 위로하듯 나타나는 연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종교적 믿음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맹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광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통제하려 드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구원은 누군가의 손길이 아닌,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헤레틱>은 그 어떤 장르적 수식 없이도 관객을 철저히 몰입시키는 힘을 지닌 작품입니다. A24 특유의 깊은 상징성과 연출력이 빛을 발하며, 휴 그랜트의 연기 인생에서도 잊을 수 없는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종교, 공포, 심리, 그리고 인간 내면의 연약함을 하나의 이야기로 직조해낸 이 영화는, 한 번 본 관객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누구의 것인가?